2019년 6월 7일 금요일

그간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돈을 쓰던 우리 부부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6월이 시작된지 일주일만에 생활비를 몽땅 다 써버린 것이다.

싱가폴 여행과 차량 구매, 고가의 자전거 구매가 모두 이루어진 5월의 씀씀이가 6월로 이월되어 넘어왔다.

가계부를 쓰고 현타를 맞아, 이제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기로 다짐한 첫 날.

정말 오랜만에 도시락을 쌌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끓인 콩나물국. 에어프라이어로 구워낸 치즈돈까스. 전자레인지로 데운 소세지.

우리집 에어프라이어의 문제인지, 그냥 내가 감이 없는건지. 조금만 더 구우면 좋겠다 하여 딱 5분만 더 구운건데, 그새 타버려 딱딱해진 치즈돈까스. 

항상 "딱 조금만 더 구우면 좋겠다"고 추가로 돌리면 타고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딱딱해진 부분을 일일히 가위로 잘라내고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딱했는지, 남편은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었다고 한다.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계란을 풀어 만든 계란국.

냉동 떡갈비와 어머님표 멸치볶음, 엄마표 무김치. 

도시락을 싸다보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는 정말 없다는 것을 느낀다. 완제품(냉동식품)이거나, 어머니들표 밑반찬들로 채우는 도시락.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몸이 푸욱 쳐지는 날. 수영은 가지 않았지만 도시락은 싼다. 

냉동실에 얼려져 있던 아무 밥을 꺼냈더니 전에 신랑이 직접 만들어 얼려놓은 김치볶음밥이다. 

미리 만들어둔 김자반을 다 털어내고 나서, 남은 참깨들이 아까워 데코처럼 밥 위에 뿌리고, 오늘은 만두국을 끓였다.

전날 밤에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계란을 풀어 만들어두고, 불기 쉬운 만두는 아침에 넣어 다시 끓여주었다. 

식당에서 판매되는 만두국은 사골육수같은 고기 육수인줄 알았는데, 멸치육수로 만든 만두국에서 제법 파는 만두국 맛이 났다. 

사골육수로 만드는 가게도 물론 있겠지만, 멸치육수로 만들어도 비슷한 맛이 나는구나! 유레카! 

파가 없어 뭔가 맹맹한 느낌이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살기로 했기 때문에 파 같은 사치는 생략하도록 한다. 

2019년 6월 13일 목요일

오늘도 나가는 만두국. 

냉장고에 있던 버섯은 나물처럼 볶아내려고 했는데, 그냥 계란으로 부쳐버렸다. 

푹 익은 김치도 짠데 버섯계란전(?)에도 소금을 너무 많이 치는 바람에ㅠ 너무 짰다. 그래서 다른 밑반찬은 생략하고, 애매하게 남은 버섯머리 하나를 반찬칸에. ㅋㅋ

오늘도 나가는 갈비산적. 얼마 남지 않아서 그냥 계속 내고 있다. 

이틀연속 같은 국, 같은 반찬이 나가는데도 불평하나 없는 착한 우리 남편. 

저 포도 과일은 지난달 집들이때 언니네 부부가 가져온 것인데, 씨없는 포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와, 그냥 잘 안먹는 신랑이 쳐박아 두다가 이제야 먹기 시작. 

한달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상한데 없이 싱싱한게 참 수상한 과일이다. 

2019년 6월 18일 화요일 

엄마가 많이 만들어 한덩이씩 얼려준 소고기 무국. 국 없이 밥 잘 못먹는 신랑 도시락에 정말 도움이 되고 있다. 

국을 잘 먹지 않는 나와 달리, 국이 없으면 퍽퍽해서 그간 국 없이 도시락이 나갈때는 항상 탄산수를 사든지 음료를 사서 같이 먹었다는 남편. 

그래도 국 내놔라 이런 소리 안하고 얌전히 주는 대로 받아먹은게 참 기특하다. 

신랑이 국을 사랑하는 국돌이인걸 알게되었어도 여전히 집에서 먹을때는 국은 준비하지 않는다. 뭐든지 요리하는 사람 마음대로다. 그래도 도시락에는 반찬 가짓수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항상 국을 준비하는 편. 

전날 갈비산적을 구울 때, 타버려서 딱딱해진 경험이 있어 오늘은 전자레인지로 데워봤다. 사실 아침에 피곤하기도 했고...

이후 잘 익었나 물어봤더니 조금더 익혔으면 좋았겠다는 대답을 해준 남편. 미안~!~! 

도시락통이 무거울 남편을 위해 차로 출근을 시켜주었다.  

2019년 6월 20일 목요일

오늘은 전날에 미리 해동시킨 국도, 미리 만들어둔 국도 없어서 도시락을 생략할까 살짝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보온이 되는 국통에 그럼 보온이 필요한 반찬을 담자!"는 생각으로 전날 사둔 마트표 석쇠불고기를 구워서 국통에 넣었다. 영양밸런스를 위해 파프리카도 썰어넣음. 

나는 익힌 파프리카를 싫어하기 때문에, 파프리카는 색감과 상큼함을 위해 볶지 않고 따로 얹어두었다. 

남는 반찬칸에는 천도복숭아를 잘라 넣었다. 손으로 잡고 과일을 먹는 것이 번거로울거 같아 과일은 왠만하면 한입거리로 준비해서 넣어두는 편이다.  

 

남편의 입맛은!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 특히 양념된 것은 더더욱! 

전에 산 양념된 소불고기보다는 이번에 산 석쇠불고기가 더욱 맛있었다. 나 또한 이에 대한 평가는 똑같았다. 

전날 수영에 갔다가 혼자 낑낑대며 무겁게 장을 봐온 석쇠불고기인데 맛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날 2인분을 볶아 1인분은 신랑 도시락에, 1인분은 내가 먹고 나머지 남은 석쇠불고기는 1인분씩 얼려두었다.

2019년 6월 21일 금요일

오늘도 국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국칸에 미리 만들어 얼려두었던 카레를 넣었다! 

카레도 이미 짠데 짠 반찬이 들어가면 안될것 같아서 짭짤한 김자반 대신 달달한 일미채볶음을 넣었다. 

해태에서 나온 불낙갈비교자.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냉동실에 계속 박혀 있다가, 아무거나 잘먹는 남편 도시락에 넣었다. 미안해서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된다고 해서 걍 넣음. 

에어프라이어로, 오일스프레이를 뿌려 구웠는데 영 마음에 안든다. 조금만 더 구워서 노릇노릇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그러다 또 탈까봐 그냥 저대로 넣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만두가 더 익었으면 좋았겠다는 남편의 평. 

에어프라이어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오늘도 국이 없다. 

맨밥인줄 알고 냉동실에서 꺼내 데웠는데 꺼내고 보니 베이컨계란볶음밥이었다. 

국칸에 마땅히 넣을게 없어 나의 최애 김치만두를 넣었다. 

만두와 볶음밥에는 왠지 김치보다는 단무지가 잘어울리는것 같아서 단무지 넣어주시고! 

짭짤한 밥에는 無맛의 김이 어울릴 것 같아 김밥김을 넣었다. 그리고 석쇠불고기까지! 

오늘은 전반적으로 짠 것 같아서 좀 걱정되었지만 반찬들의 조화는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영도 가야하고 바쁜 아침이었던데다, 나의 도시락 전용 과일통에 다른 반찬이 들어있기도 하여(남편짓이다) 오늘은 천도복숭아를 짜르지 못하고 넣어주었다. 3개를 넣으려 했는데 들어가지 않아 사진에서만 3개고 실제로는 2개를 넣어주었다.

 

2019년 6월 26일 수요일

냉동되어 있던 소고기 무국은 전날 미리 해동시켜 아침에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데웠다. 

스팸을 잘 먹지 않는 우리집에는 스팸이 넘친다. 스팸을 구워 반찬으로 내고, 마찬가지로 좀 짤 것 같아 김자반 대신 김밥용 김을 넣었다. 

다시 돌아온 나의 사랑스러운 도시락용 과일반찬통. 나의 최애 과일반찬통은 같은 크기로 2개가 있다. 크기는 작으면서 은근히 많이 들어가 도시락 과일통으로 정말 너무너무 애용하는 통이다. 나의 도시락 역사를 보면 내가 얼마나 이 통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가끔 이 통에 먹다 남은 반찬 등을 남아 두기도 하지만, 2개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는 비워두는데, 어느날 신랑이 이 통 2개에 단무지와 김을 잘라 넣어두었다. 김을 열심히 잘라 넣어두고, 남은 반찬을 정리하는 남편의 행동은 참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얼마전 언니와의 통화에서, 언니가 사소한 일로 화가난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언니의 고향친구의 결혼식에 언니는 형부와 아기와 함께 참석을 하였는데, 고향친구들은 모두 멀리 살고 있어 아기를 보여줄 일이 정말 없고(명절에도 시댁가랴 친정오랴 바쁘니),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니는 아기를 최대한 귀여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마치 전남친과도 같은 관계의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더더욱 귀여운 아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단다. 그러나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니, 아가에게 입힐 예쁜 옷이 없어 결국 남는 옷 아무거나를 입히고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아가에게 입힐 옷으로 미리 준비한 옷을 그 전날, 형부가 아기와 둘이 동네 산책을 하기 위해 아기에게 입혔고 평소 잘 토하는 아가가 그날 그 옷에 잔뜩 토를 하는 바람에 빨래를 하느라 다음날에는 입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잘못은 언니에게 있다. 그옷을 다음날 입힐 생각이었다면 미리 옷을 따로 빼두어 전날에는 입히지 못하도록 하였어야 했고, 형부에게도 이를 알려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언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언니의 계획은 아무것도 모르는 형부는 그저 2시간의 동네산책에 최고로 예쁜 옷을 아가에게 입혔다. 

언니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했던 것은, 자신이 이 결혼식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를 남편이 알아주지 못했던 것, 외부 행사에 아기를 예쁘게 하여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의 최애 과일통에 다른 반찬을 담은 것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리고 그 반찬통을 정말 써야겠다면, 남편이 남아둔 단무지나 김 중 하나만이라도 다른 통에 내가 옮겨담았으면 풀리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과일통을 쓸 수 없다는 그 사실자체보다, 그간 항상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본인의 도시락에 넣어주던 반찬통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남편의 무신경함에 답답함이 생겼다.

함께 사는 일은, 확실히 사소한 것에서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이 답답함을 참지 않고 바로 분출해낸다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서 참는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참은'것은 결국 언젠가는 터지니까. 

어머니를 따라갔던 성당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다. "내가 많이 참았는데..."라는 말은 소용 없다고. 결국 마지막 한번을 참지 못해 분노를 했다면, 그건 진정한 참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대를 위해 억지로 희생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이정도의 사소한 감정들은 내 속에서 없애는 것. 그래서 더이상 남지 않는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2019년 6월 27일 목요일

제일 끓이기 만만한 콩나물국. 고향집에 방문할 때 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싸주는 엄마.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반찬들은 이미 질리도록 고향집에서 먹고 왔기 때문에 올라와서까지 먹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런 반찬들은 1인분씩 얼려놓곤 하는데, 도시락 반찬을 쌀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번 잡채 역시 마찬가지.

한번에 많이 만들어놓고 잘 쓰고 있는 짭짤김자반과, 족발을 시켰을 때 온 겉절이를 활용하여 넣었다.

다 만들고보니 반찬이 부족한가 싶어 전날 도시락을 싸고 남은 스팸을 밥 위에 올려내었다.

수박은 전날 밤 신랑이 열심히 잘라서 넣어준 수박을 그대로 활용. 마침 작은 통에 넣어준 것도 있기에 아주 편하게 내었다.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콩나물국 활용. 청양고추도, 파도 없어 오롯이 콩나물만 넣은 콩나물국. 

김치 대신 청란젓을 넣고, 일미포와 소세지 반찬. 배달음식을 시켰을 떄 온 미니 김은 도시락을 위해 따로 빼두었다가 드디어 활용했다.

사진에서는 생토마토를 올려놓았지만, 사진을 찍고 이후 토마토는 잘라 넣어주었다.  

 

이렇게 6월 한달 도시락싸기가 끝이 났다. 그 어느때보다 도시락을 열심히 쌌던 6월. 긴축재정으로 인한 동기부여가 아침 주방에 나를 서게 했다. 

남편의 샤워 소리에 눈을 떠서 세수도 않고 도시락을 싸며 잠을 깨고, 무거운 도시락을 메고갈 남편을 위해 차키를 들고 출근을 시켜주었던 6월.

남편 출근을 시켜주기 위해 혼자 첫 운전을 시작하게 된 6월. 

가계부를 쓰고, 도시락을 싸자고 다짐한 6월 7일부터, 신랑 회사 행사가 있던 날과 따로 점심약속이 있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2번 빼고 매일 도시락을 쌌다. 

몸이 않좋아 수영을 빠진 날에도 도시락을 쌌으니. 나의 근성!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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