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셀프청첩장'이라고 하면, 인쇄까지 직접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셀프'라는 의미가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본디 '셀프웨딩촬영'이라 함은 본인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찍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스튜디오에서 찍지 않고, 드레스를 업체에서 빌리지 않기만 해도 셀프웨딩촬영이라고 하거나, 어떠한 과정에서 어쨋든 본인들의 기여도가 있으면 '셀프'가 붙는 것 같다.
나는 셀프청첩장이라기보다는 셀프디자인 청첩장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청첩장 업체를 통해 인쇄를 맡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의상, 셀프청첩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셀프청첩장을 만드는 두가지 방법
셀프 청첩장은 앞서 말한대로, 크게는 2가지로 나뉘는데
1. 직접 디자인 하고, 인쇄소를 통해 인쇄를 맡기고 제단하는 것.
2. 청첩장 업체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에 맞춰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인쇄는 청첩장 업체가 해주는 것.
1번의 장점은 원하는 규격, 원하는 용지로 맞출 수 있고 디자인이나 본인의 노력에 따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너무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것과 청첩장 외에 봉투, 식권, 스티커 등의 어려움까지 떠안게 되는 것. 어떤 크기로 할 건지, 어떤 용지로 할 건지, 인쇄소도 찾아서 원하는 바를 전달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크다.
2번의 장점은 디자인만 하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청첩장 업체에 따라 '약도'만 유료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점. 셀프라 해도 봉투, 식권, 스티커 등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주는 것, 봉투도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점, 청첩장 업체에서 청첩장 구매자에게 제공하는 식전영상, 모바일 청첩장 등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내가 들이는 노력은 배로 올라가면서 기존의 청첩장들과 가격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비싸다는 점.
나는 2번의 방법을 채택하여 셀프청첩장을 만들기로 했다.
청첩장 업체를 통해 셀프청첩장을 만들기로 했다면 다음의 일들이 남아 있다.
1. 청첩장 업체 고르기. 업체마다 제공하고 있는 규격과 가격이 다르며, 서비스가 다르다.
한 업체는 셀프청첩장 사전 인쇄 서비스(유로, 10000원)이 있는 경우가 있었다.
2. 구성 짜기(표지, 내지 어떤 내용을 채울지)
3. 표지 디자인 하기
4. 청첩장 문구 정하기
5. 약도 만들기
6. 청첩장 업체에 시안 보내기
7. 청첩장 접기
나는 표지디자인->구성짜기->약도만들기->청첩장문구정하기->청첩장업체구하기->업체에시안보내기->청첩장접기
의 순서대로 진행했고, 진행할 예정이다.
01. 청첩장 디자인하기
나는 청첩장에 우리들의 사진을 넣고 싶었다. 사진만큼 '우리만의' 청첩장의 느낌을 주는 게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디자인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도 사진을 넣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진청첩장을 생각했다가 결국 포기하는 이유가 '쓰레기통에 우리의 얼굴이 있는 청첩장이 버려지는 게' 두려워서였다.
청첩장은 주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매우 크지만, 받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어떤 디자인을 하든 크게 상관없는 것이고
요즘은 모바일청첩장이 활성화되면서 종이 청첩장은 아예 받지 않거나 받아도 잃어버리거나, 결혼식도 더 전에 버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넣어 청첩장을 만들게 되면 결혼식 후 쓰레기통에 우리의 얼굴이 있는 청첩장이 버려지게되므로, 청첩장에 사진을 넣는 것은 그다지 권해지지 않는다.
나는 내 얼굴이 버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진 청첩장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또한, 잘생긴 남편을 만났다는 것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청첩장에 사진을 넣자!
사진을 어떻게 넣을지, 어떤 사진을 넣을지 예전부터 고민해왔다.
처음에는 우리들의 어린시절 사진을 표지에, 내지에는 현재의 사진을, 뒷면에는 노부부의 손잡은 뒷모습을 넣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표지에는 사진을 넣지 않았다.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사진을 그대로 넣은 청첩장은 매우 촌스러웠다.
여러 청첩장 업체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하였지만 사진이 있는 청첩장들은 다 촌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기준).
둘째, 쓸만한 사진이 없었다.
사진을 넣기로 결정한 이후, 원본 사진을 피말리며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받은 원본 사진은... 도무지 쓸만한 것이 없었다.
내가 예쁘게 나온 사진은 신랑이 못생기게 나왔고, 신랑이 잘생기게 나온 사진은 내가 이상하게 나온 식이었다. 수정본은 한달 뒤 본식 직전에나 나온다고 하니 수정본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포토청첩장이 매우 촌스럽다는 것도 나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표지는 우리의 사진을 토대로 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은 내지에 넣자! 는 것. 사진을 내지에 넣게 되면 얼굴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아픔(?)이 덜 느껴질테니까~ 좋지 않을까!
표지에는 웨딩촬영을 토대로 한 그림을, 내지에는 실사 사진을 넣으면 청첩장을 열어보는 사람이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아기자기할 것 같다.
액자에 넣을 때도 표지 한장, 내지의 사진 한장, 이렇게 두가지를 하면 좋을 것 같았고.
내지는 조금 촌스러워도 괜찮으니까.
그림을 어떻게 그리지? 부탁? 아니면 직접?
그림을 그리기로 한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어디가서 나의 전공을 잘 말하지 않는데.....내 전공을 말하면 항상 사람들은 내가 그림을 잘그릴 것이라, 포토샵을 잘할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냐고? 물론 아니다. 난 교양 A+, 복수전공 A, 본전공은 C 인생이었다. 어쩌다 버스 탑승하여 A를 받게 된게 다다. 나의 부족한 전공실력을 미안해하며 조모임을 할 때면 나는 늘 조장과 발표를 담당하였다. 그게 우리의 조원들과 내가 win - win, happy - happy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어쨋든 이러한 나의 전공 덕분에, (나는 비록 아니지만)내 주변에는 그림을 잘그리는 친구들이 많았다.
컴퓨터나 영상 관련 특성화고를 나온 친구들, 미대 준비하던 친구들이 많았다.
내 결혼소식을 듣고, 선물로 그림을 그려주겠다 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남이 그려준 그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림이야 사실, '아이디어스' 어플만 깔아도 싸면 1만원에 의뢰할 작가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우리 부부의 '손떼'였다.
서로가 서로를 그려주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준슝과 카페에 앉아 슥슥 그림을 그려보았다.
결과는...참담했다.
기껏 해준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세상에..... 쓸 수 없는 그림 뿐이었다.
손으로 그려 스캔을 하려 했으나, 손으로 그리면 색칠을 한번만 잘못해도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나와 준슝에게는 밑그림을 다시 그려서 이전과 똑같은 그림을 그릴 능력이 없었다.
친한 후배에게 SOS 를 쳐, 타블렛을 빌리기로 했다.
후배는 한걸음에 인천에서 이곳까지 와주었다.
처음엔 분명 내가 직접 그리기 위해 타블렛을 빌리려 한건데... 타블렛 사용법을 몰라 후배에게 시범을 보여달라 한 이후, 나는 그저 넋을 놓고 후배가 그림을 다 그려주게 되었다.
나는 후배가 열심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간식을 날랐다.
반나절도 안되어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나는 내가 직접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
며칠 빌리기로 한 타블렛을 다시 후배에게 쥐어주고, 우리는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헤어졌다.
정말 이럴려고 직접 만드려고 한걸까?
청첩장 업체에서 제공한 템플릿에 후배가 그린 그림을 얹으며 드는 찜찜함.
내가 직접 청첩장을 만드려 한 이유가 뭘까?
인생에 한번뿐일 나의 결혼식, 내 눈도 줄 수 있을만큼, 나의 다리도 줄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준슝과 가족이 되는 행사. 인생에 몇 없는 내가 주인공이 되는 큰 행사.
내가 직접 신경써서 만들고 준비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과연 이렇게 남이 그려준 대로 만드는 것이 맞을까?
청첩장을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디자인적인 측면 뿐 아니라, 청첩장을 줄때의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청첩장을 건네며, 그저 결혼식에 오라는 말보다는 다른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었고, '내가 직접 그렸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이 그려준 그림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리고 직접 청첩장을 만들기로 한 것은 두고두고 이때의 추억을 상기하고 싶었던 것인데..
결국 청첩장 그림을 내가 그리는 것으로, 다시 마음을 바꾸어먹었다.
청첩장을 내가 그리려고 하니 생기는 문제. 나에겐 타블렛이 없다...
인천에 사는 후배를 다시 소환할수도, 내가 그곳까지 갈수도 없었다. 준슝에게 이야기 했더니 뜻밖의 말.
"우리도 타블렛 살까?"
최근, 지출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있는(사실은 '살짝 신경쓰는' 이지만 나의 과장된 받아들임으로) 준슝은 타블렛을 사자고 했다.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수정하고, 타블렛 사보자고.
불과 얼마전에 행거를 사느라, 이불을 사느라, 건조대를 사느라 머리를 썩인 나의 머리가 또 다시 지끈지끈했다.
후배가 쓰는 타블렛을 그대로 따라 사려고 하였더니, 후배는 자신이 쓰는 타블렛은 프로용이라며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입문자용 타블렛을 사야하나, 프로용 타블렛을 사야하나 고민으로 머리가 아팠다.
일본에 있는 동생에게 의견을 물으니, 프로용을 사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에게 팔라고 했다.
만약 마음에 안든다면, 동생에게 팔지는 않고 그냥 주겠지만... 어쨋든 그 말이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결국 프로용 타블렛을 구매했다.
후배가 그림을 그려준게 목요일, 타블렛을 사기로 한게 토요일. 구매한 타블렛은 화요일에 오기로 해서 그렇게 청첩장 만들기는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셀프청첩장을 만들기 위해 현재까지 쓴 돈,
후배에게 먹인 간식 및 저녁비용: 30,000
타블렛 비용: 410,000
440,000원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