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독서에 대한 욕심이 있어 자주 서점에 가고 책을 구경하기도 하고 사오기도 한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개인 시간이 그 이전보다 현저히 적어졌고, 그러다보니 쉬는 시간에 잠이라도 한숨 더 자는게 쉬는 거라 생각해서 독서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보통 책을 보면 보통 책 표지부터 책 뒷표지까지 샅샅히 읽곤 했는데, 시간 확보가 안 되다 보니 오히려 그렇게 읽어야 하는 강박때문에 책을 집어들지 않게 되었다.
여러 독서가의 말을 들어보면 책을 읽는 건 "읽는 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한다. 책을 읽는 건 그 책의 모든 부분을 내 지식으로 습득해야하는게 아니다. 책 읽는 시간을 내고, 한 구절이라도 읽으면서 거기서 즐거움을 얻고 잠시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의미가 있다. 하나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책 한권의 내용 모두를 읽지 않더라도 본인에게 맞는 한 구절이라도 읽으면 좋다고 한다.
어느 독서나 모두 독서긴 하지만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주부들과 직장인에게는 그렇게 짧막짧막하게 읽는 독서가 더 맞다. 이런저런 핑계로 하나도 읽지 못하는 것보다 틈틈히 시간이 날때마다 책의 어느부분이라도 펴서 읽는 습관을 들여보자.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또 그에 대한 정부의 여러 대책들이 발표되고 있어 주변에서도 부동산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나 또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면서 "집"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부동산은 움직일 수 없는 재산을 말한다. 보통은 토지나 건물들을 말한다고 한다. 단어가 주는 느낌이 재산이다 보니 집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많아지는 것 같고 나 또한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 가계의 재산으로서가 아닌 내가 살아온 "집"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여러 집에 살아왔는데 하나씩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1살 - 3살
첫 집은 서울 암사동의 다가구 주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집 근처에 슈퍼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난다. 어린아이에게 슈퍼란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백화점이 가져다 주는 감동 이상이지 않을까, 그 외에는 사실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3살 - 6,7살
두 번째 집은 경기도 성남에 다가구 주택이었다. 한 주택에 층마다 각각 한 가족씩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어 매해 가을에 낙엽을 쓸고 겨울에는 눈이 하얗게 내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봐도 정말 작은 마당이었지만 현관 밖에, 그리고 대문 안쪽에 그런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좋았던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다. 윗집과 아랫집에도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이들이 있어서 종종 같이 놀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할 때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집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아주 가파른 오르막 / 내리막길의 한가운데 집이 있어 혼자서는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는 집이었다. 몇 년 전에 그대로 그 집이 있을까 하여 찾아가 봤는데 그때 역시 길이 정말 가파르다고 느꼈다. 아쉽게도 그때 그 집은 건물을 새로 지었는지 찾지 못했다. 문득 집 안의 생김새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집 밖의 풍경이 생각난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6,7살 - 초2
이전에 산 집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의 초등학교 근처에 살았다. 빌라 였는데 이 때 부터는 그 주변이나 집이 잘 기억 난다. 남은 유치원 시절은 유치원 버스를 타고 다녔던 것 같고, 학교는 바로 앞이라 걸어 다녔는데 정말 가까워서 어린아이 걸음으로도 1-2분이면 학교 정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다 보니 뭔가 하나 콕 짚어서 쓰기가 애매하다. 거의 꼭대기 층이었는데 옆집이었는지 윗집이었는지 옥상으로 가는 길이 그 집 안에 있었던 게 생각이 난다. 옥상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집안을 지나서 올라가야 하는 게 지금도 놀랍다. 다만 결국 거길 올라간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것 보면 가보진 못했던 것 같다.
configure: error: no acceptable C compiler found in $PATH
See `config.log' for more details
centos 설치시 minimal로 설치하는 바람에 C compiler가 없다.
gcc를 설치한다.
yum install gcc
다시 에러발생
configure: error: Python >= 2.7 or >= 3.2 and the PLY package are required for dnssec-keymgr and other Python-based tools. PLY may be available from your OS package manager as python-ply or python3-ply; it can also be installed via pip. To build without Python/PLY, use --without-python.
python도 없다.. python을 설치한다. ply가 필요한거지만, python 설치시 기본 패키지로 설치되는듯 하다.
우리집 에어프라이어의 문제인지, 그냥 내가 감이 없는건지. 조금만 더 구우면 좋겠다 하여 딱 5분만 더 구운건데, 그새 타버려 딱딱해진 치즈돈까스.
항상 "딱 조금만 더 구우면 좋겠다"고 추가로 돌리면 타고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딱딱해진 부분을 일일히 가위로 잘라내고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딱했는지, 남편은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었다고 한다.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계란을 풀어 만든 계란국.
냉동 떡갈비와 어머님표 멸치볶음, 엄마표 무김치.
도시락을 싸다보면, 내가 직접 만든 요리는 정말 없다는 것을 느낀다. 완제품(냉동식품)이거나, 어머니들표 밑반찬들로 채우는 도시락.
몸이 푸욱 쳐지는 날. 수영은 가지 않았지만 도시락은 싼다.
냉동실에 얼려져 있던 아무 밥을 꺼냈더니 전에 신랑이 직접 만들어 얼려놓은 김치볶음밥이다.
미리 만들어둔 김자반을 다 털어내고 나서, 남은 참깨들이 아까워 데코처럼 밥 위에 뿌리고, 오늘은 만두국을 끓였다.
전날 밤에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계란을 풀어 만들어두고, 불기 쉬운 만두는 아침에 넣어 다시 끓여주었다.
식당에서 판매되는 만두국은 사골육수같은 고기 육수인줄 알았는데, 멸치육수로 만든 만두국에서 제법 파는 만두국 맛이 났다.
사골육수로 만드는 가게도 물론 있겠지만, 멸치육수로 만들어도 비슷한 맛이 나는구나! 유레카!
파가 없어 뭔가 맹맹한 느낌이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로만 살기로 했기 때문에 파 같은 사치는 생략하도록 한다.
오늘도 나가는 만두국.
냉장고에 있던 버섯은 나물처럼 볶아내려고 했는데, 그냥 계란으로 부쳐버렸다.
푹 익은 김치도 짠데 버섯계란전(?)에도 소금을 너무 많이 치는 바람에ㅠ 너무 짰다. 그래서 다른 밑반찬은 생략하고, 애매하게 남은 버섯머리 하나를 반찬칸에. ㅋㅋ
오늘도 나가는 갈비산적. 얼마 남지 않아서 그냥 계속 내고 있다.
이틀연속 같은 국, 같은 반찬이 나가는데도 불평하나 없는 착한 우리 남편.
저 포도 과일은 지난달 집들이때 언니네 부부가 가져온 것인데, 씨없는 포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와, 그냥 잘 안먹는 신랑이 쳐박아 두다가 이제야 먹기 시작.
한달정도 지났는데 여전히 상한데 없이 싱싱한게 참 수상한 과일이다.
엄마가 많이 만들어 한덩이씩 얼려준 소고기 무국. 국 없이 밥 잘 못먹는 신랑 도시락에 정말 도움이 되고 있다.
국을 잘 먹지 않는 나와 달리, 국이 없으면 퍽퍽해서 그간 국 없이 도시락이 나갈때는 항상 탄산수를 사든지 음료를 사서 같이 먹었다는 남편.
그래도 국 내놔라 이런 소리 안하고 얌전히 주는 대로 받아먹은게 참 기특하다.
신랑이 국을 사랑하는 국돌이인걸 알게되었어도 여전히 집에서 먹을때는 국은 준비하지 않는다. 뭐든지 요리하는 사람 마음대로다. 그래도 도시락에는 반찬 가짓수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항상 국을 준비하는 편.
전날 갈비산적을 구울 때, 타버려서 딱딱해진 경험이 있어 오늘은 전자레인지로 데워봤다. 사실 아침에 피곤하기도 했고...
이후 잘 익었나 물어봤더니 조금더 익혔으면 좋았겠다는 대답을 해준 남편. 미안~!~!
도시락통이 무거울 남편을 위해 차로 출근을 시켜주었다.
오늘은 전날에 미리 해동시킨 국도, 미리 만들어둔 국도 없어서 도시락을 생략할까 살짝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보온이 되는 국통에 그럼 보온이 필요한 반찬을 담자!"는 생각으로 전날 사둔 마트표 석쇠불고기를 구워서 국통에 넣었다. 영양밸런스를 위해 파프리카도 썰어넣음.
나는 익힌 파프리카를 싫어하기 때문에, 파프리카는 색감과 상큼함을 위해 볶지 않고 따로 얹어두었다.
남는 반찬칸에는 천도복숭아를 잘라 넣었다. 손으로 잡고 과일을 먹는 것이 번거로울거 같아 과일은 왠만하면 한입거리로 준비해서 넣어두는 편이다.
남편의 입맛은!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 특히 양념된 것은 더더욱!
전에 산 양념된 소불고기보다는 이번에 산 석쇠불고기가 더욱 맛있었다. 나 또한 이에 대한 평가는 똑같았다.
전날 수영에 갔다가 혼자 낑낑대며 무겁게 장을 봐온 석쇠불고기인데 맛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날 2인분을 볶아 1인분은 신랑 도시락에, 1인분은 내가 먹고 나머지 남은 석쇠불고기는 1인분씩 얼려두었다.
오늘도 국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국칸에 미리 만들어 얼려두었던 카레를 넣었다!
카레도 이미 짠데 짠 반찬이 들어가면 안될것 같아서 짭짤한 김자반 대신 달달한 일미채볶음을 넣었다.
해태에서 나온 불낙갈비교자.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냉동실에 계속 박혀 있다가, 아무거나 잘먹는 남편 도시락에 넣었다. 미안해서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된다고 해서 걍 넣음.
에어프라이어로, 오일스프레이를 뿌려 구웠는데 영 마음에 안든다. 조금만 더 구워서 노릇노릇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그러다 또 탈까봐 그냥 저대로 넣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만두가 더 익었으면 좋았겠다는 남편의 평.
에어프라이어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도 국이 없다.
맨밥인줄 알고 냉동실에서 꺼내 데웠는데 꺼내고 보니 베이컨계란볶음밥이었다.
국칸에 마땅히 넣을게 없어 나의 최애 김치만두를 넣었다.
만두와 볶음밥에는 왠지 김치보다는 단무지가 잘어울리는것 같아서 단무지 넣어주시고!
짭짤한 밥에는 無맛의 김이 어울릴 것 같아 김밥김을 넣었다. 그리고 석쇠불고기까지!
오늘은 전반적으로 짠 것 같아서 좀 걱정되었지만 반찬들의 조화는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영도 가야하고 바쁜 아침이었던데다, 나의 도시락 전용 과일통에 다른 반찬이 들어있기도 하여(남편짓이다) 오늘은 천도복숭아를 짜르지 못하고 넣어주었다. 3개를 넣으려 했는데 들어가지 않아 사진에서만 3개고 실제로는 2개를 넣어주었다.
냉동되어 있던 소고기 무국은 전날 미리 해동시켜 아침에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데웠다.
스팸을 잘 먹지 않는 우리집에는 스팸이 넘친다. 스팸을 구워 반찬으로 내고, 마찬가지로 좀 짤 것 같아 김자반 대신 김밥용 김을 넣었다.
다시 돌아온 나의 사랑스러운 도시락용 과일반찬통. 나의 최애 과일반찬통은 같은 크기로 2개가 있다. 크기는 작으면서 은근히 많이 들어가 도시락 과일통으로 정말 너무너무 애용하는 통이다. 나의 도시락 역사를 보면 내가 얼마나 이 통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가끔 이 통에 먹다 남은 반찬 등을 남아 두기도 하지만, 2개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는 비워두는데, 어느날 신랑이 이 통 2개에 단무지와 김을 잘라 넣어두었다. 김을 열심히 잘라 넣어두고, 남은 반찬을 정리하는 남편의 행동은 참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얼마전 언니와의 통화에서, 언니가 사소한 일로 화가난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언니의 고향친구의 결혼식에 언니는 형부와 아기와 함께 참석을 하였는데, 고향친구들은 모두 멀리 살고 있어 아기를 보여줄 일이 정말 없고(명절에도 시댁가랴 친정오랴 바쁘니),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니는 아기를 최대한 귀여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마치 전남친과도 같은 관계의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더더욱 귀여운 아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단다. 그러나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니, 아가에게 입힐 예쁜 옷이 없어 결국 남는 옷 아무거나를 입히고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아가에게 입힐 옷으로 미리 준비한 옷을 그 전날, 형부가 아기와 둘이 동네 산책을 하기 위해 아기에게 입혔고 평소 잘 토하는 아가가 그날 그 옷에 잔뜩 토를 하는 바람에 빨래를 하느라 다음날에는 입힐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잘못은 언니에게 있다. 그옷을 다음날 입힐 생각이었다면 미리 옷을 따로 빼두어 전날에는 입히지 못하도록 하였어야 했고, 형부에게도 이를 알려두었어야 했다. 그러나 언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언니의 계획은 아무것도 모르는 형부는 그저 2시간의 동네산책에 최고로 예쁜 옷을 아가에게 입혔다.
언니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했던 것은, 자신이 이 결혼식에 얼마나 목을 매고 있는지를 남편이 알아주지 못했던 것, 외부 행사에 아기를 예쁘게 하여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의 최애 과일통에 다른 반찬을 담은 것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내가 잘못한 게 맞다. 그리고 그 반찬통을 정말 써야겠다면, 남편이 남아둔 단무지나 김 중 하나만이라도 다른 통에 내가 옮겨담았으면 풀리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과일통을 쓸 수 없다는 그 사실자체보다, 그간 항상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본인의 도시락에 넣어주던 반찬통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남편의 무신경함에 답답함이 생겼다.
함께 사는 일은, 확실히 사소한 것에서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이 답답함을 참지 않고 바로 분출해낸다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에서 참는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참은'것은 결국 언젠가는 터지니까.
어머니를 따라갔던 성당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다. "내가 많이 참았는데..."라는 말은 소용 없다고. 결국 마지막 한번을 참지 못해 분노를 했다면, 그건 진정한 참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상대를 위해 억지로 희생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이정도의 사소한 감정들은 내 속에서 없애는 것. 그래서 더이상 남지 않는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제일 끓이기 만만한 콩나물국. 고향집에 방문할 때 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싸주는 엄마.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반찬들은 이미 질리도록 고향집에서 먹고 왔기 때문에 올라와서까지 먹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런 반찬들은 1인분씩 얼려놓곤 하는데, 도시락 반찬을 쌀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번 잡채 역시 마찬가지.
한번에 많이 만들어놓고 잘 쓰고 있는 짭짤김자반과, 족발을 시켰을 때 온 겉절이를 활용하여 넣었다.
다 만들고보니 반찬이 부족한가 싶어 전날 도시락을 싸고 남은 스팸을 밥 위에 올려내었다.
수박은 전날 밤 신랑이 열심히 잘라서 넣어준 수박을 그대로 활용. 마침 작은 통에 넣어준 것도 있기에 아주 편하게 내었다.
콩나물국 활용. 청양고추도, 파도 없어 오롯이 콩나물만 넣은 콩나물국.
김치 대신 청란젓을 넣고, 일미포와 소세지 반찬. 배달음식을 시켰을 떄 온 미니 김은 도시락을 위해 따로 빼두었다가 드디어 활용했다.
사진에서는 생토마토를 올려놓았지만, 사진을 찍고 이후 토마토는 잘라 넣어주었다.
이렇게 6월 한달 도시락싸기가 끝이 났다. 그 어느때보다 도시락을 열심히 쌌던 6월. 긴축재정으로 인한 동기부여가 아침 주방에 나를 서게 했다.
남편의 샤워 소리에 눈을 떠서 세수도 않고 도시락을 싸며 잠을 깨고, 무거운 도시락을 메고갈 남편을 위해 차키를 들고 출근을 시켜주었던 6월.
남편 출근을 시켜주기 위해 혼자 첫 운전을 시작하게 된 6월.
가계부를 쓰고, 도시락을 싸자고 다짐한 6월 7일부터, 신랑 회사 행사가 있던 날과 따로 점심약속이 있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2번 빼고 매일 도시락을 쌌다.